여행 동서남북- 임고서원                                            
임고서원의 늦가을 풍광은 쓸쓸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찬 서리에 떨어져 낙엽으로 딩굴고 찾는 이 없는 서원 안팎은 그저 삭막감이 감돈다. 더군다나 충절의 기상이 서려있는 마당 앞 500년생 은행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게다가 주위는 인근 주민들의 잡일 터로 변해 더 황량하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죽음으로 맞선 만고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선생의 충절을 향배하는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때 부래산에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선조때 이곳 고향 땅에서 다시 복원됐다.
현관인 '영광루'에 올라서면 선생의 올곧은 기개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 옆에 '단심가'를 세긴 비석이 무심한 방문객의 발길을 잡는다.
영천시 임고면 임고서원 가는 길은 육군3사관학교를 가기 전 조교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영천댐~ 보현산 천문대로 이어지는 길로 드라이브 코스로도 적당하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임고 들판. 갈까마귀떼가 무리지어 하늘을 난다. 들녘에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여전히 바쁘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났을 참인데 내년 농사 준비를 하는가 보다.
임고서원은 임고면 소재지 중심에서 왼쪽으로 자그마한 야산을 등지고 있다. 문이 굳게 잠긴 영광루 주위를 기웃거렸다. 포은의 영정과 몇몇 유물들을 구경하지 못하고 동정만 살피다 발길을 돌렸다.
임고서원을 나서면 곧 영천댐이다. 보현산 깊은 계류를 타고 내려온 물이 이곳 영천댐에서 쉬어간다. 검푸른 호수 위로 부는 바람이 제법 차다. 토끼 꼬리처럼 짧아진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여울, 조용한 수면 위로 크고 작은 산 그림자가 키 자랑을 한다. 산중호수의 늦가을 풍경은 조용하면서 아늑하다.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날아 왔는지 겨울 철새들도 보인다. 먼길에 휴식을 취하느라 날개를 접고 있다.
호수 길은 충효삼거리 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보현산 천문대. 오른쪽은 포항 죽장과 기계로 가는 길이다.
보현산을 오르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능선을 지그재그로 몇 구비 돌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한 겨울 추위를 느끼게 할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분다.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이 후련하다. 보일 듯 말 듯 멀리 동해 바다가 있고 등뒤로는 태백 준령들이 겹겹이 위용을 자랑한다. 산아래 산골 마을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천문대의 방문객 센터부터 들렀다. 천체사진을 전시해 놓은 작은 전시관이다. 오리온 성운, 하쿠다케 혜성, 태양계의 각종 항성들을 비롯해 분화구가 선명한 달 사진도 있다. 전시 자료는 대략 100여점. 전시장에는 기념품도 판매한다. 대부분 천체와 관련된 액세서리와 엽서들이다.
천문대를 내려와 정각마을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영천 화북~ 군위 고로~신령~ 대구로 이어진다. 차량 통행이 적은 한적한 시골길이다. 인근에 화산산성, 인각사와 장곡휴양림 등 문화재와 관광지들이 있다. 대구까지는 대략 2시간 거리.

- 인근 가볼한 곳-

◇선류산장 - 충효삼거리에서 죽장 방향으로 가다 지동 삼거리를 못 미쳐 왼쪽으로 1km쯤 산길을 올라가면 조용한 산장이 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던 산장지기가 2, 3년 전 황토와 통나무를 이용해 아담한 산장을 꾸몄다. 일상에서 탈피해 피로를 풀기에 적당하다. 맑고 깨끗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산장지기의 모습도 정겹다.
여행객을 위해 잠자리와 식사도 제공한다. 하지만 숙박은 미리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식사는 떡국과 된장찌개가 있다. 주인장이 직접 빚은 동동주와 매실주, 도토리묵 산채전도 맛있는 먹을거리다. 특히 야외에서 굽는 장작불 돼지고기 맛이 일품이다. 문의 054)262-2263

◇선원동 철불좌상 - 임고서원과 영천댐 사이 선원리 선정사라는 절에 철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일제시대 발굴된 것으로 보인다. 상세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신체의 굴곡이 분명하면서 양감이 뚜렷해 강한 인상을 준다. 선정사 아래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정세아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환구 세덕사도 있다.
◇인각사-신라 선덕여왕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일연 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사적 374호인 인각사에는 보각국사탑(보물 428호)과 비가 있다. 사찰 앞에는 백학들이 서식했다고 이름 붙인 학소대도 볼만하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작성일: 2002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