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

     시인이 만난 사람(25)... 산장지기 효산                      200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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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희 시인

“저 산 아래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이 있지만 여기엔 다섯 계절, 아니 열 개쯤 계절이 있어요. 마을에 봄꽃이 피어나는데도 이곳엔 잔설이 남아 있기도 하고, 산 아래 마을이 아직 여름이라도 이곳엔 아침저녁 서리가 내리기도 하구요.”
남도 처갓집에서 한 자루 가져 온 황토로 물들인 헐레헐레한 개량한복에 흰 고무신을 신은 효산은 한티터널을 마악 지나 죽장면 지동리 배고개 가는 등성이에 살고 있습니다. 신선이 머무는 곳이라고 ‘선류산장’이라 이름 짓고 화장끼 없이 고운 아내와 들구름같은 딸 야운이가 함께 살지요. 이제는 제법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데요. 복잡한 일상에서 돌고 도는 도시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 느긋하게 앉은 산장을 마냥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구석구석 쌓인 8년이라는 세월과 효산의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녹아 있기에 산장의 맛이 더 나는 것이지요.
효산을 처음 만난 건 오래전 그가 운곡서원에 머물 때였습니다. 서원 텃밭을 주말농장으로 분양을 한다고 해서 낼름 신청을 했지만 그의 엄격한 심사 결과 저는 그만 제외되고 말았지요. 이것저것 심어놓고 주말마다 찾아가 따먹고 놀면 참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과 한 눈에도 보이는 제 게으름을 들킨 탓입니다. 낙방의 이유인 즉 “권선생 같은 양반 밭 일구라 하면 씨앗만 뿌려놓고 돌보지 않을게 당연한데 결국 모두 우리들 일거리가 되고 말 건 뻔합니다. 텃밭 농사도 농사라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거든요.” 충분히 말이 되는 소리라 수긍을 할 수 밖에요. 그 무렵에 이미 효산은 지금의 산장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사는 세월을 부지런히 오가며 골 깊은 산중턱에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은 돈만 들이면 후딱 지을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나르고 흙을 개어 차곡차곡 지은 정성이었지요.
본체를 짓고 나서 그곳에 갔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참나무 껍질 지붕과 황토벽, 그리고 벽난로가 갖춰진 이곳이 정말 사람 손만으로 지은 집일까. 정말 ‘손’이라는 게 지독한 힘을 지닌 것이구나 생각했지요. 처음엔 깊은 산중에서 얻은 갖가지 재료로 찻집을 하면서 정자를 하나 지어 ‘죽현정’이라 이름 짓고 가끔 누구나 함께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지요. 기획도 따로 없고 그렇다고 섭외도 하지 않았지만 달이 큰 날 밤이면 하나 둘 산장으로 사람들이 올라왔어요. 효산 내외는 떡도 하고 김치도 잔뜩 버무려 놓았지요. 손님 주인 할 것 없이 소매를 걷고는 솥뚜껑에다 온갖 산나물로 둥그런 전을 부치고, 커다란 독에서 동동주를 퍼다가 마시곤 했어요. 그렇게 달빛 아래 시간이 깊어지면 누군가 시를 낭송하고, 소리도 한 자락 뽑고, 함께 어깨를 걸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불렀지요.
그 다음엔 먼데서 찾아 온 손님들이 하룻밤 산 속에서 머물다 갈 수 있는 방을 만들었어요. 처음 본체를 지을 때는 동생이 많이 도와주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혼자 힘으로 했대요. 말이 쉽지 100톤이나 되는 흙을 개어 한 움큼씩 나르고 얹어 집을 짓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왜 힘들 때가 없었겠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라고 힘을 내곤 했대요. 머릿속에 설계도를 그려 넣고 짓는 집이지만 그 어느 집보다도 야무지고 단단한 것은 ‘집’이라는 것의 의미를 먼저 축대로 세우기 때문인 것 같았어요. 자신이 손수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평온을 느끼고 편안한 휴식과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효산의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이젠 효산네 식구가 아주 많아요. 삽순이와 삽순이 새끼, 풍산개 풍녀, 토끼도 한 마리. 암탉, 수탉, 그리고 늦여름 산을 흔드는 매미부터 새들, 나무들….무엇도 가두지 않고 함께 삽니다. 주말이면 반가운 얼굴들이 산장을 찾아오고 그런날은 달도 오래 머물겠지요.
아주 가끔 도시를 꿈꾼다는 외동딸 야운이가 벌써 3학년입니다. 산장 곳곳에 예쁜 글을 삐뚤빼뚤 써서 붙여 놓았는데 정말 곱습니다. 야운이가 더 커서 세상에 나가면 그 땐 알게 되겠지요. 엄마 아빠가 그리고 산중의 풍경들이 자신에게 준 값진 선물이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사과가 발긋발긋 익어가는 여름 반 가을 반, 산장지기 효산은 마당에 잔디를 심기위해 종일 돌을 옮기느라 바쁩니다. 산에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 산의 부지런한 식구입니다.
<권선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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